본문 바로가기

Etc.

[조로산] 단풍길 To. 쭈니님

각자의 고유한 색을 가지고 단풍이 만개한 길거리를 생각 없이 걷고 있었다. 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사르르 낙엽이 하나 둘 씩, 벚꽃잎이 휘날리듯 따뜻한 색이 물든 잎들도 나무로 만들어진 터널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낙엽이 휘날리는 터널 안을 둘러보면 단풍놀이를 나온 가족들이 대부분 이였다. 구석에 잔뜩 쌓인 낙엽들 안에 몸을 파묻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서로에게 낙엽을 흩뿌리는 연인들도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다짜고짜 산책로로 발걸음을 향한거라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나보다 생각이 더 없는 녀석이 오기까지는.

 

-어이! 거기 망할놈!

 

어딘가로 가출한 정신을 다시 바로잡기에 충분한 소리였다. 소리의 근원지로 뒤를 돌아보니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한 눈에 바로 들어왔다. 왜 저 새끼는 저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자전거를 끌고 나를 향해 페달을 밟고 있는건가? 꼴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잡고 멈춰선 곳은 내 옆 이였다.

 

네가 여긴 왜 온거야.”

여기가 어디냐? 길 좀 알려주라.”

 

지금 나는 엄청난 길치입니다. 라는 명목으로 여기까지 자전거를 끌고 왔나? 저 머리에 이런 생각까지 했다는 생각에 기특한 마음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왜 웃냐고 물어오는 질문에도 대답은 하지 않고 단정히 정돈되어 있는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주었다. , 마리모 많이 컸네. 여기까지 올 생각을 하고? 나를 정확히 속였을 것이라 생각을 했었던지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네놈 얼굴 보려고 여기까지 왔겠냐, 망할 눈썹!”

길을 왜 여기에서 잃어버리냐? 멍청한 새끼.”

 

직진으로 나있는 산책로의 입구에서 저기 끝까지 손가락 끝으로 동선을 그리며 한심한 눈빛으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속내를 들켰는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라선 노발대발 화를 내는데 내가 지금 알고 싶은건 마리모 새끼의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였다. 답답한 마음에 발로 녀석의 자전거를 밀었는데 어.. ... 눈 앞의 마리모가 점점 시야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전거바퀴는 허공에서 돌고 있었고 안장에 앉고 있던 장본인은 바닥과 진하게 포옹을 하고 있었다. 헐 씨발. 저 멀리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훑어보다 나도 모르게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녀석의 위로 쓰러진 자전거의 손잡이를 잡아 올려 내 뒤에 놓았다. 그러곤 바닥에 쓰러져있는 녀석을 잡아 올리려 팔목을 감싸 쥐었는데 갑자기 녀석이 힘을 주는게 아닌가. 일으켜 세우려던 의도와 반대로 녀석의 위로 엎어졌다. 미처 화를 열기도 전에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저번에 단풍구경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

“......”

왜 혼자 있냐, 멍청한 녀석.”

내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 내가 말을 했어도 흘리듯이 말 했었던게 분명한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던거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불과 2cm 밖에 안되는 거리를 두고 녀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고회로가 멈추고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카메라 셔터 소리에 순간 멈춰있던 두뇌가 빠르게 회전이 되기 시작했다.

 

우와, 현실게이다.”

 

형아! 저기 형아들 왜 저러고 있는거야?”

루피, 저런거 보면 건강에 안 좋아.”

 

우악스럽게 조로를 밀쳐내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책로에서 내가 무슨 짓을 당한거야? 내가 미쳤지. 저러고 몇 분을 버티고 있었냐. 체감시간 1시간인데? 안 그래도 말려있는 눈썹이 더 말려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재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과는 달리 녀석은 뿌옇게 일어난 먼지를 털고 여유 있게 일어나고 있었다.

 

쟤가 말한게 맞는 말 아니냐?”

무슨..”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현실게이 그거 말하는거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확실한 것 같았다. 점점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쪽팔려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맞으며 처량하게 서 있는데 녀석이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데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쪽팔리냐? 이미 목소리에서 화가 스려있었다. 녀석이 그 질문에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모여든 인파를 뚫고 지나가려는데 나보다 처량하게 서있는 자전거가 눈에 밟혔다.

 

! 자전거는!”

몰라, 내꺼 아니다.”

 

미친 새끼.. 앞에 달린 바구니가 오른쪽으로 휘어 처량함을 더한 자전거와 점점 모여들고 있는 인파를 해치고 산책로를 빠져나왔다. 산책로 출구를 나오자마자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어영부영 걸어가고 있는데 녀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 뭐냐. 의도는 아니였다.”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과 빗나갔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녀석을 바라보는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네 녀석이 갑자기 사라졌길래 아무 자전거나 끌고 왔는데..”

잠시만, 그거 절도죄 아니냐?”

 

들어보니 이거 도둑놈이잖아? 과장된 손짓을 해가며 녀석을 멀리 하려는데 아까 녀석이 말한 말과 문맥이 안 맞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깊은 깨달음을 얻어 단풍놀인가 뭐시긴가 그거 때문에 온거 아니였냐 마리모? 손을 휘젓다 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말은 역시 마리모라는 극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생각나서. , 잘못됐냐?”

아니, 망할 마리모새끼.”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손바닥만한 낙엽이 어디서 날아오더니 그대로 녀석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걸 그냥 떼어내면 될 것이지 쓸어내리는 바람에 얼굴에 낙엽 조각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 실로 장관이였다. 사진을 찍고 그대로 뒤돌아 튀었다. 그걸 핑계로 다시 산책로로 돌아 들어갔다. 간만에 같이 나왔는데 그냥 가면 아쉽잖아? 오랜만에 멍청한 새끼 산책이나 시키고 들어가야겠다. 너무 안에서만 있다 보니 몸이 굳었다.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보루]무제 To.지밀언니  (0) 2015.12.30
노래가사 조각글(꾸준히 갱신  (0) 2015.11.01
[사보에이]불꽃놀이 To.탄산님  (0) 2015.10.10
[로우루] 경계선 To.멜리  (0) 2015.10.03
[사보루] 무제 To.헤퐁언니  (0) 201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