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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치카라] Blood 1

빈틈없이 꽉 찬 보름달이 어둠이 짙게 깔린 숲의 길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보름을 대비해 임시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던 조그마한 오두막 안에도 굳이 호롱불을 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달빛이 환하게 내리쬈다. 그가 사라진 이후로 처음으로 걷히는 보름달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심경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장남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오소마츠 형님. 저를 부르는 말 다음에 이어질 대화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심하게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쥬시마츠는 아직 자고있나?”

아무래도 힘이 많이 빠지니깐.”

그럼 나 잠시..”

밖에 나간다는 말은 하지마.”

 

오소마츠의 명령은 칼에 베일 듯이 단호했다. 금방이라도 베일 듯한 날카로운 한 마디에 애꿎은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달이 이렇게 환하게 비춘다고. 아마 거기 있을지도 몰라. 영혼은 이미 정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뒤따라가려는 몸을 붙잡은 사람은 결단력이 확고한 장남이었다. 미쳤냐. 보름달 뜨면 가장 위험한게 뭔지 알고나 말해? 애석하게도 그와의 접점은 정반대로 어긋나버렸다. 달이 큰 그림자 사이로 숨어있는 날이면 나 자신이 폭주해버리고 달이 차오르는 날이면 그는 아무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유혹으로 나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  , 이치마츠.“

     “.”

     “구미호를 본 적이 있나?”

     “.”

     “나도 한 번 자태만이라도 보고 싶군.”

     “미쳤네, 망할마츠. 그년은 보름 때만 나와. 찾을 생각도 하지마.”

     “알았다고. 내가 브라더를 두고 어디 가겠나?”

     “......닥쳐.”

 

언젠가 이치마츠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할 일 없던 낮에 무료하게 몇 시간동안 떠들었던 이야기가 이런 일에 접점이 되어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금같이 눈앞에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 갔다올게. 쥬시마츠한테는 말하지 말..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얼굴에 주먹이 꽂아들었다. 안에서 터진 비릿한 향이 미뢰를 자극했다.


정신 차려, 그 놈은 이제 인간이 아니야.”

틀림없는 인간이다! 분명히 그저께 봤던 인영은 이치마츠..”

너는 뱀파이어고 걔는 사람 홀리는 여우야! 알아?! 환한 달밤에 지금 당장 정좌로 달려가서 뭐할래? 유혹 당할래? 그 모습에 홀려서 간이 아작나겠지. 게다가 걘 넌 못 알아볼 거야.”

아니, 분명 나를 알아볼 거다!”

새겨들어. 네랑 몸 섞었던 이치마츠는 이제 없다고.”

 

이 형님이 너네 보살피기 힘들다~ 한 집안이 이렇게 복잡해서야. 순식간에 온탕과 냉탕을 넘나들었다. 순식간에 달라진 온도에 이제야 방황했던 시선을 오소마츠에게 맞출 수 있었다. 보통 이상의 자들을 거느리고 통제하는 장남의 위력은 심히 대단했다, 이래서 우리들을 이끌어 나갔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었다. 그 녀석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상상이 안가. 그래서 더 간절하게 내뱉었다.

 

카라마츠. 우리 같은 형님조들이 협조를 해줘야 한다고~”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제발 부탁한다, 오소마츠. 온탕과 냉탕의 차이가 아무래도 괜찮다면 괜찮았다. 열기가 더 올라 싸늘하게 웃어보이는 저 미소를 보면.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카라마츠의 말을 조용히 곱씹어보던 오소마츠는 조용히 그림자가 지는 테이블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위에 걸쳐앉는 몸짓은 날렵했다. 굳게 닫혀있던 입이 천천히 운을 떼기 시작했다.

 

, , . 유혹 받고 싶어 안달난 형제를 말릴 마음은 없어. 그래도 이 형님이 사명이 있지.”

“...오소마츠.”

어떻게든 나가봐. 나갈 수 있으면.”

 

활짝 웃어보이며 드러난 치아에 감춰진 송곳이 솟아올랐다. 그를 지켜보는 눈빛에서 두려움과 확고함이 섞여 빛났다. 그 눈빛은 영롱한 푸른색에서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 * * 

 

 

골목길을 벗어난 숲속은 이미 피 비린내가 옅게 진동하고 있었다. 벌써 근방에서 한 바탕 해버린건가.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지는 광경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정좌까지 가려면 아직 10여분을 걸어야 되는데 그 시간 안에 아군이건 적군이건 만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겠다. 최소 전방 500m 이내에 뱀파이어가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을 끝낸 쵸로마츠가 소총을 꺼내드려 허리춤으로 손을 갖다 댄 순간이었다.

 

타당- .

 

누가 소음기도 안 쓰고 무작정 쏴대는거야. 기본 상식도 박혀있지 않은 무지식한 헌터들을 한탄하며 둘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시야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놈...”

“.... 저기.”

 

토도마츠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던 시선을 옮겼다. 그 사이 잽싸게 움직이는 실체를 목격한 제 눈을 믿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홀려 잠식되어버릴 듯한 아름다운 자태는 여기까지 비추어졌다. 의미모를 광기에 흥분한 눈은 누군가를 향해 잔뜩 휘어져있었다. 서서히 피어오르는 아홉 개의 꼬리가 그 자태를 다 뽐낼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나 다름없었다. 떨어지지 않는 눈 대신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발이 본능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도망쳐. 그에게서 등을 돌려 나무 사이사이를 헤집고 달리는 발길이 바빠졌다.

 

것보다 구미호가 저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원래 숨어 생활할 텐데... 직접 본건 두번째네.”

 

근데 그게 하필 형이라니. 그때의 밤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구미호를 본 적은 없었다, 실제로 본 사람도 거의 드물었다. 그게 당연할 것이, 그의 시야에 잡힌 인간은 절대 살아날 수 없다. 재빠르게 달리던 발걸음을 서서히 늦추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숲 입구 앞에 서있었다. 오늘 사냥을 무리겠어. 저렇게 활보하고 다닐 줄은.. 멈출 때 까지 놓지 않았던 소총을 쥔 손이 자국이 남을 정도로 창백해지고 땀에 젖어있었다. 그 존재만으로 이렇게 긴장을 한 적은 오소마츠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무언가를 갈망한 눈빛에서 살기를 느꼈다.

 

ㅡ.

 

뭐야. 방금. 머릿속에 깊게 잠식된 사이 금세 지붕 위를 훑고 지나간 그림자를 좇았다. 능숙한 감으로 빠르게 하늘을 훑던 둘의 시야는 동시에 어느 굴뚝 위에 닿았다. 그 둘은 다시 내달렸다.

 









앞에서 미처 설명드리지 못했던 설정을 알려드립니다.

오소와 카라, 쥬시는 뱀파이어

쵸로와 이치, 토도는 헌터입니다.

 

뱀파이어는 주 식량인 피를 보충하기위해 동물과 사람을 사냥하고 헌터는 그런 뱀파이어를 사냥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엄청난 앙숙입니다. 당연히 앙숙일 수밖에요. 하지만 마츠노 가의 한 지붕 아래엔 뱀파이어 셋과 헌터 셋이 함께 공존합니다. 뱀파이어인 장남 오소마츠가 자신과 같은 종족에게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일반인으로 태어난 쵸로와 이치, 토도마츠를 헌터의 길로 안내했습니다.

 

먼저 헌터들부터. 같은 집안에 뱀파이어가 있으니 이 셋은 그들의 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헌터 셋이 마츠들 이였습니다. 이후에 드러난 가족관계에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입지가 매우 안 좋지만 이들로 인해 인간이 입는 피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뱀파이어들. 다른 동료들 역시 이 셋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이들 중 사냥이나 어느 부문에서건 최상위를 거머쥐고 있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쥬시마츠까지 건드리지 못합니다. 쥬시마츠 역시 사냥부문에서는 탑으로 꼽힙니다.

 

이치마츠는 위에서 보다시피 헌터였지만 구백년간 인간에게 원한을 품고 살아온 구미호에게 인간의 정기를 뺏긴 마지막 희생자가 되어 특징을 물려받아 구미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을 모든 형제들이 지켜보았습니다. 다음에 여기에 대해 더 자세히 나올테니 여기는 패스.

 

카라마츠와 이치마츠는 연인사이입니다. 오소와 쵸로역시.. 개인취향 듬뿍^^..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마늘이 약점은 아니지만 마늘을 매우 싫어합니다. 사살 방법은 총으로 정확히 심장을 꿰뚫어버리는 것 뿐. 약점은 은(Silver)과 빛. 손전등이나 전구같은 인위적인 빛이 아닌 자연이 만들어낸 빛에만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날이면 송곳니가 살짝 뭉툭해지고(빠른 사냥이 어려워진다.) 햇빛을 받으면 송곳니가 완전히 숨어버림과 함께 힘도 약해집니다. 그렇다고 해도 힘은 인간의 2배가 넘어 함부로 건들 수가 없습니다.

 

뱀파이어들은 낮과 밤의 모습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낮에는 평범한 인간으로 지냅니다


이 글이 개인 취향이 매우 짙은 글이라.. 취향이 비슷하시다면 환영입니다ㅠㅠ

여기까지 재밌게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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