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마저 잇고 싶을 때 이어나갑니다.
2015년 11월 어느 날 시작
2015. 11. 21. 01:23 1번째 수정
2016. 06. 22. 01:21 2번째 수정
ー1.
흔히 이런걸 현실도피라고 한다. 일이 복잡하게 얽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계속 동경하던 <런던>으로 떠났다. 왜 동경하였느냐 하면은 그냥. 환상이 있었다. 유럽풍의 분위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잠시 피난을 온 것 일지도 모르겠다.
ー 2.
날씨만 아니면 모든 것은 완벽했다. 수중에 돈도 많이 들고 있고 이 나라를 동경하며 열심히 배워온 실력으로 열심히 대화하며 장기간 묵을 숙소도 정했다. 근데 날씨가 이따구라니. 평소에도 비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 곳에 3일간 있으면서 꿀꿀한 날씨도 과연 좋은 날씨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이끌려 광장으로 갔다.
ー 3.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겼다. 테라스에 앉아 광장안의 풍경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미친, 진짜 귀엽네.’ 라는 말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나와 버렸다. 시선이 향한 곳엔 소년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한 남성이 앉아있었다. 스케치북을 들고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보아하니 화가임이 분명했다. 무작정 일어나 그 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다가가는 순간 난데없는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나도 모르게 짧은 세 단어가 새어나왔다. 어, 씨. 뭐야. 모국어를 내뱉었는데 모국어가 들려왔다.
ー 4.
“괜찮으세요?”
정작 나를 치고 간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는데 그 젊은 남성이 스케치북을 한 손에 끼고 손을 내밀어주었다. 호의를 무시하지 않고 손을 잡으려는데 알고보니 내 옷에 무언가 묻어서 손을 뻗은 것이었다. 덕분에 내 손은 허공을 나돌아다녔다.
ー 5.
“트라팔가 로우요.”
“트라팔가 광장에 트라팔가씨가 오셨네요?”
뭐가 재밌는지 고개를 제껴대며 웃는데 어느 부분이 개그포인튼지 아직도 감을 못 잡겠다. 확실한건 방금 전의 일로인해 사이가 가까워 졌다는 것.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된 사실은 저도 한국계 영국인이라는 것이다. 이름은 몽키 D. 루피. 직업을 물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화가가 맞았다. 그리고 굉장히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ー 6.
이 곳에 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았다. 혼자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나온 나에게 좋은 말동무가 되어줄 것 같았다. 하루 뒤에도 왔고 그 하루 뒤에도 왔다. 그 다음날은 우산을 들고 왔다. 그와 처음으로 티타임을 가졌다. 그와의 공통분모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 가지 제안을 냈다.
“저 이제 로우씨한테 트랑이라고 부르면 안돼요?”
“네?”
“일종의 별명같이.. 편하잖아요! 로우씨도 편하게 루피라고 불러주세요.
"아, 잠시만요."
"잘 부탁해, 트랑아!”
갑자기 친구처럼 편해진 호칭과 반말에 당황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친밀도는 그 전보다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서로에게 편해졌다는 증거중에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 7.
그를 지켜보며 한 가지 사실을 새로 알아냈다. 루피는 꽤나 얼굴이 알려진 화가인 듯 했다. 광장에 앉아있다 보면 하루에 몇 번씩은 꼭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자신을 그려달라는 부탁에 응하고 하얀 백지위로 흑연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곤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서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자리를 떠났다. 저 종이 위에 내가 새겨진다면. 그런 잡다한 고민으로 1개월을 지냈다.
- 8.
"어쩌지? 당분간 못 나올 것 같은데."
당분간. 참으로 애매모호한 단어다. 루피가 생각하는 그 범위를 몰라 물어보니 최소한 한 달 이란다. 루피가 없을 그 당분간의 일정을 매꿔보려 할 일을 대충 떠올려 보았지만 루피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생각 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있었나보다. 나마저도 자각을 못하고있었는데 두터운 손가락이 입술위를 스쳤다.
"그러다 피나."
첫 만남 이후로 정신이 멍해진건 처음이였다.
- 9.
더 이상 루피는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 매일 광장을 지켰다. 1개월간 알고 지내며 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았다. 화가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루피에 대해 아는 사실이 아무것도 없었다. 뒤늦게 찾아온 후회가 고통스러웠다. 루피가 어디에 사는지 조차도 몰랐다. 새벽에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길까지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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