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직업의 생활등 여러방면이 거의 다르므로 유의바랍니다
싸움에 능통한 요원들이 있는 반면에, 신분위장에 능통한 요원들도 있기 마련이다. 특수요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뭔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보통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특수한 상황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싸우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나와 에이스같은 경우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와 다른 케이스다. 흔히 말하는 인재로 들어와 정보수집에 열혈을 가하는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목표로 만나 같은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이성들에게나 가질법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감정을 서로 깨닫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 또는 평생을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동료에서 연인까지의 발전은 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현재는 본의 아니게 조직 내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간단히 말해 사내연애중이다.
하루라도 조용한 날은 찾기 어려웠다. 적어도 정보망은 그랬다. 항상 침입을 시도하려는 바이러스들이 끊이지 않고 친히 여기까지 찾아와주었으며 꾸물꾸물 기어 들어오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막아내느라 항상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우리 쪽도 침입에 열혈을 가하고 있어 딱 잘라 비평을 할 처지는 되지 않았다. 정보를 캐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같은 처지에 놓인 저쪽도 똑같이 생각은 해주겠지. 일 처리를 끝낸 화면에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시간이 새벽을 향해 가고 있어 그런지 피로와 함께 눈이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에이스도 저 쪽 벽 너머 화면 앞에서 징하게 버티고 있을게 분명하다는 생각까지 미친 사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간조가 일찍 시작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피로가 2배 이상 축적된 것 같은 기분에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로비로 내려갔다. 늦은 밤인데 로비가 꽤나 시끄러웠다. 카페 안에 잔뜩 깔려있는 전투복을 보아하니 이제 막 훈련조들이 훈련을 마치고 내려온 것 같았다. 그 무리 중 안면이 익숙한 얼굴도 보였기에 인사도 건넬 겸 자동문 버튼으로 손을 옮기던 순간이였다.
“뒤는 누가 뚫릴것같냐?”
“에이스 대령?”
“아니지, 어떻게 그 성격에 대령님이 깔리겠냐?”
누가 바텀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한창 이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훈련조 고참들인데 저 새끼들이 아직 훈련을 못 배워먹었나. 분명 루피에게 입 조심을 시켜달라고 부탁까지 건넸건만 그 부탁의 유효기간은 하루가 가지 않았다. 한 두 번 들은 주제가 아니라 수평선 끝까지 뻗은 넓은 마음으로 별 말없이 넘어갔지만 언젠간 크게 당할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이유모를 확신과 함께 카페 안으로 발을 들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본 목적을 위해 인사를 건네려 훈련조에게 다가가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삐딱하게 다리를 꼬는 버릇하며 턱을 괴고 창가를 주시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에이스였다. 사람 많은 무리에게 가던 발걸음을 옮겨 에이스로 향했다.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저를 향해 걸어오던 사보를 향해 눈을 돌렸다. 굳어 있는 얼굴이 평소의 장난기 서린 화색을 띄어가는 것 같이 보였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왼쪽 눈가에 넓게 자리 잡은 흉터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쟤가 저번 주부터 왜 저러지? 딱히 둘 사이에 문제가 될 만한 트러블 같은건 없었다. 관계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요즘 정보망에 침입 횟수가 늘었다고 치지만 이 쪽 성생활까지 큰 관여는 하지 않을만한 일이다. 감정표현 역시 전과 다르게 서툴러진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도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일이 힘들어서’ 였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부터 답답함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져 자신도 모르게 정돈된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행동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의미인 것을 충분히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에 대한 보충설명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이 힘들면 적어도 무슨 이윤지는 알아야 될 것 아냐.”
“......”
“밖만 보지말고 나봐.”
그제서야 창밖으로 회피하고 있던 시선이 사보에게로 돌려졌다. 저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어떤지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다. 턱을 괴고 있지 않은 손을 붙잡아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몸의 체온 같은 그런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 손이 차가웠다.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미간이 좁혀졌다. 좁혀진 미간주위를 습관적으로 꾹꾹 눌러 대주던 에이스의 손길을 쳐내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테이블에서 갑자기 봉긋 솟아오른 금발을 보고 그제서야 저를 알아보던 무리들이 사보를 불렀지만 대답에 응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똑같은 주제로 열심히 얘기를 이어가던 로비의 무리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고스란히 피부에 닿아왔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더 얘기를 나눌 감정조차 식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돌아온 모니터 앞은 착잡했다. 서로 맞잡은 손에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창에 그대로 비수를 맞아버린 고통의 감정이 느껴졌다. 이유모를 고통을 입은 그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단지 그걸 지금까지 숨겨온 행동에 화가 났다. 답답한 마음에 손을 짚고 생각해봐도 도저히 그렇다할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스치듯 생각나는 원인이 있었지만 자신이 그런 이유에 딱히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사람이 혹시라는게 있지. 그 혹시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은 생각에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 데는 정말 우연한 만남에서였다. 새벽에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들어오는 더 이상 오지 말아 주었으면 손님들을 다 돌려보낼 쯤에야 교대가 되었다. 머리가 땅에 닿자마자 밀려오는 엄청난 피로에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순간에도 축적된 피로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화장실로 비몽사몽한 정신에서도 질리지도 않는지 분명 들었던 것 같은 내용이 다시 회자되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자동으로 음소거가 되어주었지만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닫혀있던 입은 언제부턴가 무장해제되어 다시 나불대고 있었다. 저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냐는 생각으로 세면대로 향하던 힘없는 발걸음이 멈추었다. 두 손으로 세면대를 짚고 무언가를 열심히 듣고 있는 에이스의 형체가 방금 잠에서 깼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약간 부은 눈에 들어왔다. 그 역시도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보니 머리가 옆으로 살짝 뻗친 사보가 보였다. 수도꼭지가 위로 올라 물이 계속 새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어딘가에 집중하고 있는 에이스를 이상하게 여긴 사보가 수도꼭지를 내렸다. 아래로 흐르던 물이 멈추자 시선은 아래로 향했다.
-야.
다소 격양된 어조로 에이스를 부르며 모서리를 짚고 있던 손을 빼내었다. 다행히 손은 놓지 않는다는 생각은 잠깐, 또 다른 인기척이 들리지마자 맞잡은 손이 떼어졌다. 설마라는 의문감이 점점 확신으로 치닫았다. 애석하게도 그 놈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에이스.”
“이제 관심가지지 말고 꺼져.”
이별을 고하는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나올만한 눈빛이 아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목소리의 격양이 눈에 띄게 변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듯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고 그걸 눈으로 담아내고 있었던 사보의 다소 고조된 감정은 이들에게 다가온 직속후배가 분명한 놈의 건성한 인사에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아, 씨발, 야.”
“..네?”
“네 년 말고 앞에 서있는 놈.”
“제가 여자는 아닙니다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요원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에이스로 향해있던 사보의 눈빛이 자신의 뒤에 서있던 요원에게 옮겨갔다. 세상 좋게 흘러가고 있으니깐 이게 지금 물로 보이지? 세상 물정 모르고 설치는 네놈들한테 정신력 강화가 필요해 보이는군. 더 낮아지기는 힘들어 보이는 저 밑으로 깊게 깔린 목소리와 평소에 잘 볼 수 없었던 눈빛에 언제왔는지 우르르 몰려 서있던 요원들이 움직이질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여태껏 수평을 유지하던 입꼬리가 비대칭으로 올라가며 이미 팔에 얕게 깔려있던 소름을 다시 덧칠해주었다.
“이 새끼들이 현실게이를 본 적이 없으니깐 이렇게 나불대지.”
“......”
“지금 봐라.”
사보가 말을 끝마친 순간 사이로 빠져나가려던 에이스의 손목을 붙잡고 그대로 옆에 열려있던 칸으로 밀어넣었다.
* 실제 부사관이나 장교에게 험한 말을 절대 꺼낼 수 없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함부로 입 털다가 걸리면 털리는건 물론 영창까지 갈 수 있습니다. 위 표현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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