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객지에서

[오소쵸로/카라이치] 객지에서 1

정루애 2016. 7. 11. 00:32

* 마피아 AU

** 들어가기 전에 설명 먼저 드리겠습니다.

객지 :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임시로 있는 곳


 

그리고 이 작품에서 나올 생소한 단어는

[Persia] 페르시아 [Leonidas] 레오니다스(진영) [Xerxes] 크세스(지역)

이 세 개로, 페르시아와 레오니다스는 진영을, 크세스는 지역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쌍둥이들은 페르시아 소속입니다.

이번 1화만 영어명을 사용해요. 부디 재밌게 봐주세요 :D

 

* * *

 

정적을 깨는 구두 굽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같은 땅을 밟고 있는 두 개의 다리는 서로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서서히 굳어가는 종아리와 그를 지켜보는 방 안을 누비고 다니는 발걸음.

 

약속하지. 이 도안대로만 완성을 해준다면 ‘Xerxes'로 보내준다고.”

“......, 알겠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완벽한 도안이라네.”

정말, 마지막, 맞지요.”

마지막 제안이라네. 아들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싶지 않나?”

 

5년 안으로 부탁하네. 그에게 걸 맞는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아래로 내리 꽂힌 시선이 자신감을 잃고 더욱 추락을 하였다. 억지로 손에 쥐여진 도안에는 현대 기술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가 가벼운 목례를 하고 방을 나섰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이들이 있을 방으로 들어섰다.

 

아빠 왔다!”

힘든 일 있어요?”

 

자식들의 걱정 섞인 마디가 가슴을 쑤셨다. 가장이라는 무게를 더 짊어지고 들어서는 발걸음이 가벼울 리가 없었다. 어두운 낯을 들고 아이들을 도저히 대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분간 마주하지 못할 얼굴들을 눈에 가득 담았다. 눈시울에서 방울방울이 고였다.

 

이치마츠, 쥬시마츠, 토도마츠.”

으응?”

아빠, 울어?”

 

울지 말라는 아우성을 듣자마자 잔뜩 고인 방울이 터져버렸다. 아직 한 품에 안기는 세 자식들을 안고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당분간 아빠를 보지 못할 거란다.

 

* * *

 

여기 맞아?”

[, 30분 전에 왔다 갔는데..]

 

주위를 배회하는 시선이 의심으로 가득 찼다. 방 하나하나를 다 뜯어봐도 버려지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라는 것 외에는 어느 특이한 점이 없었다. 폐가가 분명한데. 분명 여기는 도시 전설로 꽤 알려진 유명했던 집이었다. 전혀 수상한 낌새가 없는 분위기에 그는 괜한 머쓱함으로 귀에 끼워진 인이어를 다시 고쳐 꼽았다.

 

[방은 다 돌았어?]

다 돈 것 같아. 앞에 창고 비스무리 한 거 있는데 형아 피곤..”

 

한데....... 말을 끝마치려는 순간 쏟아지는 피로를 뚫고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미약하게 간질였다. 이성보다 앞서는 본능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부터 향은 더 진하게 다가왔다. 의문의 벽 하나를 두고 고른 숨을 내뱉었다. 춤에 차여진 총을 장전하자마자 문을 제껴 열었다. 비록 완벽한 예측에는 어긋나 버렸지만 총구가 향한 곳에는 그가 예상했던 시체가 보였다.

 

시체가 네 구나 계시네..?”

[대충 신원은 어때?]

남자애 셋에 남성 어른 하나.”

 

가엾게 돌아가신 분 얼굴이나 확인해보자. 그가 낮게 중얼거리며 피로 얼룩진 시체를 발로 밀었다. 구두코로 살짝 들려진 시체가 손을 뻗었다. 그를 밀기 위해 공중에 들린 발이 미약한 손아귀의 힘에 의해 멈춰섰다. 뭐야, 씨발! 급하게 방아쇠를 당기려던 검지의 움직임보다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더 빨리 들려왔다. 여전히 총구는 미약하게 숨을 쉬는 시체에게 향해있었다.

 

아저씨..”

뭐야.”

“......우리.. , 살려줘...”

우리?”

 

죽은 것이 아니라 치명상을 입은 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에 다급하게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겹쳐져 있는 몸을 하나씩 떼어보니 네 명에게 골고루 흩뿌려진 피는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방대한 피였다. 그를 제외하고는 의식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놈만이 타박상으로 생긴 상처가 가득했고, 나머지 둘은 외상을 입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목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호흡도 맥박도 약간 불규칙하게 뛰고 있을 뿐, 그 둘은 명백한 기절이었다.

 

[뭐야, 오소마츠 형. 무슨 일이야?]

, 얘네 살아있거든?”

[살아있다고?]

아저씨...!”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내뱉은 마지막 발악이었다. 전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서린 눈동자가 정확하게 오소마츠의 시선에 꽂혔다. 곧이어 비춰진 감정은 절박함이었다.

 

제발...”

이 형아 사람 살리는 직업은 아닌데.”

 

대충 상황 설명은 필요하니깐 살려둬야 하나? 갈등을 시작할 무렵 이어진 소년의 말은 그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에 충분했다.

“Leonidas.. 아저씨도 알잖아?”

“......!”

[ 뭐라는거야, 지금.]

“......”

 

그 한마디를 끝으로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이 멀어졌다. 인이어에서도 그의 입에서도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오소마츠의 시선이 빠르게 누워있는 4명을 훑어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쵸로마츠, 빨리 이 쪽으로 와. 차 대기 시켜놓고. 무전을 끝내고 숨이 제대로 붙어있는 나머지 두 명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보니 세 명의 얼굴이 소름 돋게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얘네들은 갑자기 뭐야. 복잡해지는 기분에 얼굴을 쓸었다.

 

* * *

 

침대위에 가지런히 뉘여진 몸에서 반응이 보였다. 램프불만 방 안을 밝히고 있는 한밤중이라 특별한 눈부심은 없었지만 절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배회하는 시선에 불안감이 젖어있었다. 의식을 잃은 곳은 분명 찬 대리석 바닥 이였을텐데 족히 킹 사이즈는 되어 보이는 폭신한 침대에 뉘어있다. 옆에 누워져 있는 다른 형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 일어나셨나?”

 

정적을 깨는 목소리에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은은하게 방 안을 비추던 램프 빛 대신 누군가에 의해 LED등이 켜졌다. 그제서야 누워있던 나머지 둘도 인상을 찌푸린 채 서서히 눈을 떴다. 그 둘도 먼저 일어난 한 소년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양 옆을 둘러보고 나서야 앞의 의자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 누구세요..?”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이야.”

저희 맛없어요...”

“......해치진 않아.”

 

잠도 다 깬 것 같은데 슬슬 얘기를 해볼까. 아까부터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침대 위로 사뿐히 올라왔다. 반쯤 감긴 소년의 눈이 그들의 움직임을 조용히 훑어냈다. 그가 생각했던 직종이 확실했다.

 

당신네들 마피아 맞지.”

?”

마피아 조직 맞지?”

 

이야, 눈썰미가 대단한데? 얘 우리 쪽 가보로 삼아야겠다. 옅게 미소를 띄며 장난기 묻은 말을 내뱉자 쵸로마츠의 타박이 이어졌다. 타박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그의 시선은 생기가 가신 눈동자를 마주했다. 흥미롭다는 듯이 입 꼬리를 치켜들며 목을 앞으로 내밀었다. 흩어져있던 양 옆의 시선도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모여졌다. 뻔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눈썰미는 있어도 눈치는 없는 모양이네. 결국 기다리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너네 이름은?”

그쪽이 보는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토도마츠, 이치마츠, 쥬시마츠.”

그거 말고 풀 네임.”

마츠노 이치마츠.”

 

이치마츠가 말을 끝마치자마자 둘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 세 쌍둥이라는 큰 접점을 지나는데 어떻게 성까지 같을 수가 있나. 우연의 연속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실타래가 엉킨 듯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동명이인이건 세 쌍둥이건 다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들어가려 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우리 아버지는 어디갔어.”

 

여전히 예상을 뚫고 들어오는 질문에 그의 기분이 상당히 불쾌해졌다. 내가 누구에게 심문 받는 스타일은 영 아닌데 말이야. 눈에 띄게 거슬린다는 표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다 문득 이 셋과 같이 발견된 진짜 시체가 생각났다. 이치마츠라는 녀석의 말에 추리를 해보면 이 녀석들한테 둘러싸여 있던 그 시체가 이들의 아버지란 소리임이 확실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놈들이 우리 아버지를 처참히 죽이고 도망쳤어.”

“.......”

몸을 굴리던지 어떻게 굴리던지 상관없으니깐.”

그래서 우리 쪽에 넣어달라고?”

 

실소를 터뜨리며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생각을 꿰뚫렸는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저의 정곡을 정확히 찔러가던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날을 내뱉지 않았다. 게다가 사전에도 없었던 말이 분명했음을 양 옆에 그의 형제들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들 역시 당황한 눈초리로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저 혼자 결심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단순한 복수심에 들여보내달라고? 그건 안되지. 이건 너희가 시시콜콜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야, 꼬마야. 인질이라는 사실을 자각 못하고 있나본데, 넌 그냥 어떻게 Leonidas에 대해 알고 있는지 순순히 불면 돼. 애초에 너희를 데려온 것도 이 이유에서 비롯됐어. 알아?”

그럼 내가 지금 당장 혀 깨물고 뒤져도 괜찮다는 거네.”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놈이 밀당을 시도하고 있다.

, 죽어.”

나 죽으면 얘네 한테 물어보려고? 이를 어째. 내가 다 알고 있는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점점 바닥으로 추락하는 평정심을 쵸로마츠가 겨우 끌어내주었다. 조용히 그의 어깨에 올려진 손으로 인해 더 이상 험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참을 인을 새기고 다시 조곤조곤하게 말을 뱉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 이상 선택지는 없어. 양 옆에 있는 놈들까지 끌어들인다는 조건 하에 성립하지.”

?”

형 미쳤어?”

그게 싫으면 나가 죽어. 절대 우리가 불리한 내기는 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에 쵸로마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그와 대조되는 반응으로 이치마츠는 여전히 오소마츠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시 Persia라는 건가. 불리한 내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그들의 원칙이다. 어차피 나중에 자세히 심문 당할 것이란 생각에 일부러 말로 내뱉진 않았다.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도 대충 내용은 알고 있을 터였다. 이치마츠가 양 옆을 번갈아보자 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가 전해졌다.

 

좋아. 성립. 이제 비밀 누설에 대한 대가는 말 안해도 알겠지.”

 

방금까지의 살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를 죽이려들던 살기 담은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씻기고 없어졌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는 극심한 온도차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 통성명부터. 내가 마츠노 오소마츠. 옆은 마츠노 쵸로마츠.”

 

이름을 듣고서야 아까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는 듯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도, 얼굴도 똑같은 마피아 원이라니. 그러나 곧 이어지는 그의 말에 생각 대신 귀를 열었다.

 

우리 말고 한 명이 더 있긴 한데 걔는 레오니다스에 잠입하고 있어.”

그럼 세 쌍둥이...?”

맞아. 이런 우연도 다 있네~”

 

자세한 얘기는 쵸로마츠랑 심문실에서 하고 형아는 이만 간다. , 그전에 쵸로마츠 잠시만 따라와. 두 손가락을 까딱거려 그에게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그 제스처에 쵸로마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둘은 방안을 빠져나왔다. 영문도 모르는 새내기들이 남은 방안은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분위기였다.

 

* * *

 

 

또 다른 방으로 걸음을 향했다. 걸음이 다다른 곳의 방문이 열리자마자 오소마츠의 손이 붙잡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런거야.”

그래서 따로 불렀잖아.”

정말 우리 팀에 넣으려고 이러는건..”

정답.”

 

대답을 하며 남은 발을 넓은 빈 방으로 우겨넣었다. 억지로 들어온 터에 쵸로마츠의 미간은 더 이상 좁혀들 틈새도 없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보다도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그가 지금껏 알던 오소마츠가 취할 법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동안 최정예 선발부대도 가차 없이 뿌리치던 그가 아니었던가. 저런 소년들을 함부로 스카웃을 해갈 이유는 전혀 없다. 5년 뒤에 있을 지휘자 체인지 기간을 생각하면 시간도 촉박하다. 최정예 부대를 사용하는 것도 모자를 판에 생판 일반인인 것도 모자라 성인도 아닌 청소년이라니. 어릴 때부터 혹독하게 이 바닥을 굴러온 사람이 아니면 제 아무리 발 빠른 청소년이라고 해도 판단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제 허리춤에 차인 리볼버도 장식은 아닐텐데... 그런 상황에서 죽은 동태 눈을 하고 있던 녀석의 머리가 뚫리지 않은 것도 신기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총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바라본 오소마츠의 시선은 꽤나 흥미로운 표정을 하고선 어느새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그 녀석들 놀라운 발전을 보일거야.”

뭔 발전..”

이 형의 촉감이 말해줬거든!”

 

그 한마디와 함께 쵸로마츠의 허리에 자연스레 팔이 둘러졌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흑심이 눈에 선해 인상을 쓰며 둘러진 팔을 쳐냈다. , 횽아가 한 번만 안아보자는데!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는 그를 뒤로하고 방문을 잡았다.

 

심문하라면서. 그리고 형은 어디 갈 건데.”

바람 쐬러가요~ 우리 쵸로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근데 정말 할 말이 이것 뿐이야?”

궁금한 거 알았으면 됐지, 애매하게 아는 것 보단.”

이럴 때 일수록 절실히 느끼는데, 형의 위치를 망각하지마.”

 

단호하게 내뱉은 말을 마지막으로 방을 나갔다. 쵸로마츠가 매정하게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문을 젖혔다. 이미 쵸로마츠는 심문실로 향한 뒤였다. 그를 쫓아가려고 젖힌 문이 아니었다. 그 전부터 목적지는 정해져있었다.

 

 

 

 

* * *

 

 

여러 개의 구두굽 소리가 요란하게 멈추어섰다. 피로 둘러싸인 싸늘한 시체에서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파리꼬인 시체부터 구두굽에 채인 팔까지 어제의 상태 그대로였다. 부패의 진행도만 제외한다면. 더 이상 눈 뜨고는 보기 싫은 모습에 행동을 재촉했다.

 

처리해. 남은 건 나줘.”

알겠습니다.”

물론 아무한테도 누설하지 말고.”

시체를 들어 올리는 처리반을 눈으로 훑고는 뒤를 돌았다. 망각. 망각이라. 그의 위치는 결코 낮은 지위가 아니었다. 절실히 느낄만큼 저의 행동이 낯설었나. 사실 나 자신도 낯설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었다. 먼 훗날에서 속삭인다. 그 이유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