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치카라] Blood 2

정루애 2016. 3. 2. 22:48

속도 면으로는 카라마츠가 더 우세였다. 말을 끝마치자마자 바로 달려든 오소마츠에게 근소한 차이로 잡히지 않고 거처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상을 뒤덮은 파란 빛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붉은 눈빛이 매섭게 날아다녔다. 지붕 위로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뱀파이어를 발견한 헌터들이 총을 들었지만 공중으로 헛발을 쏴댈 뿐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는 살상무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들어간 곳은 이치마츠가 알려주었던 정좌가 있는 어느 숲이었다. 분명 폭포가 있었다고 했는데.. 숲으로 들어올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분명 거대할 폭포의 위치조차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어디인거냐, 폭포는..”

목이나 축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찰나, 갑자기 세찬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보니 거짓말처럼 무릉의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암석사이로 피어나는 이끼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줄기, 몇 백 년 이상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커다란 정좌가 놓아져있었다. 정좌 사이로 피어오르는 푸르른 달밤. 어릴 적 어느 책에서 보았던 풍경이 눈앞에서 복제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정좌로 발걸음을 옮겼다. 홀린 듯이...

 

안 돼.’

 

향하던 발걸음이 우뚝, 멈춰섰다. 가지 말라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

 

날카로운 날이 선 위협이 느껴졌다. 순간 스쳐지나간 넓은 시야에 비춰진 것은 소름 돋게도 날 속에 숨겨진 부드러운 춤 선이었다. 다시 저를 향해 움직이는 형태가 잡혔다.

 

이치마츠!”

“......”

잠시 기다려, 이치...!”

 

대답 없이 돌아오는 공격은 무차별했다. 아무리 적이라도 자신의 형체를 해칠 순 없었다. 목을 스치는 날을 피하는 방법 외엔 아무런 손도 대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치마츠의 눈의 비치는 형제는 형제가 아니었다. 죄책감에 시달려 먹이조차 구하지 못한 미호의 눈에는 싱싱한 먹이가 제 영역으로 들어와 잡아먹어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유혹의 몸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피가 주식이다. 뜯어내 물면 혈액이 터져 나올 거야. 숨통이 끊어질 때 까지 네 녀석을 원망하며 죽어나간 자들의 혈액이. 벌써부터 입가가 아려왔다. 너무 행복해서, 그게 지독한 고통으로 찾아왔다. 이 괴로움은 이 놈의 간을 베어 먹어야 나아질 것 같아.

 

이치마츠....... 날 모르겠나...”

“......”

너의 형이라고..”

 

 

다가오는 이치마츠를 향해 총을 들었다. 사실 손에 들린 총은 단순한 위협용 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의도부터가 단순한 위협용이었지 해치려는 용도로 사용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고의로 빗나가게 조준을 했지만 유혹에 못 이겨 예상보다 한참을 빗겨간 총알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던 눈빛은 더 심한 갈망으로 채워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저의 유혹에 못 이겨 겨우 정신 줄을 붙잡고 서있는, 이미 변해버린 자신에겐 그저 낯선이 일뿐인 자에게 다가갔다. 놀이는 끝났다, 멍청한 놈아. 그가 손을 뻗는 순간 뾰족한 손톱이 뺨에 옅게 박혔다. 그리고 빠져나간 자리엔 옅게 생채기가 남았다.

 

푸흡.. 마지막 발악이야?”

“......”

웃기네.”

 

접혀있던 하나의 꼬리가 마저 올라갔다. 완성된 아홉 개의 자태를 빛내는 꼬리가 올라가면 유혹에 못 이겨 나가는 자는 죽는다. 유혹에 못 이긴 자는 죽어야만 했다.

 

콰득

 

목덜미가 젖혀지는 동시에 오른 어깨가 무언가에 의해 움푹 파였다. 미칠 듯 한 허기에 핀이 나간 정신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제 옆에는 저의 어깨를 물어버린 장남, 오소마츠가 있었고 앞에는 저의 허리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총알을 쏜 자들, 삼남과 막내가 서있었다. 뒤늦게 쫒아오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쥬시마츠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카라마츠 였다. 모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되감겨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밀려오는 당혹감에 입부터 벙하니 벌어졌다.

 

이치마츠.”

“......”

당장 카라마츠를 놔. 이건 규율에 어긋난다.”

 

오소마츠의 말에 단단하게 카라마츠의 등을 붙잡고 있던 이치마츠의 손의 힘이 풀어졌다.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힘이 풀어졌지만 아직 가시지 않은 유혹 덕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지끈하게 아려오는 이마를 짚었다.

 

오소마츠 형이 날아 다니길래 놀랐다고.”

여기서 당하던 사람이 카라마츠 형 일줄은..”

 

그냥 지나가다 운 없이 잡힌 헌터인줄 알았지. 정신없이 달려와 이제야 상황을 살펴보니 수차례 공격이 있었는지 카라마츠의 몸에 생채기가 여럿 나있었다. 뱀파이어라 출혈량도 꽤 많았다. 아까 진동한 피 냄새가 이 냄새였군. 그래서, 이치마츠는 어떻게 할건데. 쵸로마츠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아홉 개의 꼬리는 황홀하게 솟아올랐던 자태를 잊은 채 아래로 축 늘어져있었다. 이마를 짚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라마츠가 말을 꺼냈다. 분명히.. 몇 일을 굶었을거다. 그래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는거야.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던 상황에서도 염연히 적이라면 적일 이치마츠의 상태를 바로 스캔해냈다. 이어진 침묵으로 다른 형제들 역시 이치마츠의 상태에 동의를 했다.

 

맞아. 배고파 미치겠어.”

이치마츠 형..”

망할마츠, 소름 돋게 정답이네. 그러니깐 당장 꺼져. 씨발, 꺼지라고. 꺼져!!”

 

눈물 젖은 절규와 함께 다시 스물스물 꼬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놀란 형제들을 두고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무릉으로 뒤돌아 뛰어갔다. 폭포수가 암석 위에서부터 녹아내려 사라졌다. 한 폭의 무릉이 그려졌던 자리에는 사라졌던 나무들이 제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곧바로 카라마츠가 뒤따라 뛰려고 했지만 4명이 막아선 덕에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잡아낸 제정신으로 혈육으로 이어진 형제들을 위했던 마지막 발악이었다. 다시 피어오르는 허기에 한 때 헌터였던 자의 마지막 자존심은 이내 버려졌다. 눈에 보이는 짐승들을 모조리 잡아 허겁지겁 간을 파내 먹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손은 이미 피 철갑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러곤 혼자 땅을 치며 절규했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사랑했던 사람의 간을 파내 먹으려던 자신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해서.